의료인류학이란 건강, 질병, 의료 등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인류학의 하위 영역이며 인류학자와 정신의학자와의 협력에 의한 '문화와 인격'의 흐름 등을 그 학문적 기원으로 하고 건강, 질병, 의료 등의 문화적 배경이나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주로 연구한다.
1. 의료인류학의 정의 및 개념
의료 인류학은 인류학의 한 분야로서, 인류학의 방법과 이론적 성취에 기대어 인간의 질병과 건강, 의료체계 및 지유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의료인류학은 응용적이면서도 동시에 이론적인데, 임상적 치료 효과를 증진하고 공동체의 건강을 증진하고자 하는 응용인류학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의료기술의 등장과 변화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인간, 생명, 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문제 제기를 통해 인류학의 이론적 발전에 크게 기여해 오고 있다.
2. 역사와 발전단계
의료인류학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50년대이나, 의료인류학자들은 그 학문적 경향성이 이미 그 이전부터 인류학 내에 존재해왔다고 생각했다. 특히 인류학 내의 네 가지 상이한 전통성과의 연관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첫 번째로는 체질인류학이고, 두 번째로는 주술과 마술을 포함한 비서구 의료에 대한 전통적인 민족지적 관심이고, 세 번째는 1930년대 후반 이후 정신의학자와 인류학자의 공동 연구에 의한 통문화적 정신의학이다. 마지막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학자들의 적극적인 국제보건 활동 등이 포함된다.
1) 체질인류학
체질인류학이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생물학적 변이와 진화 및 적응을 연구하는 인류학의 한 분야로, 고인류학, 뼈대생물학, 고병리학, 법의인류학, 영장류학 등을 포함하고 있다. 진화 이론 및 유전학의 발달로 분자적 수준까지 연구의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최근에는 체질인류학이라는 용어 대신에 생물인류학이라는 용어가 더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의과대학 해부학 교실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던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영양 상태와 성장, 체격과 관절염, 궤양, 빈혈, 당뇨병과 같은 의료적 관심을 의사들과 공유했으며 실제로 그들 중 상당수는 의사이기도 했다. 현재까지 의과대학의 해부학 교실에서 참여하거나 생의학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생물학적 연구를 수행하는 체질 인류학자들은 이러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정신의학
현대 의료인류학의 형성에 영향을 준 또 다른 전통은 1930년대 이후 인류학자와 정신의학자 모두가 주목했던 비서구 사회의 심리적 내지 정신의학적 현상에 관한 연구이다.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20세기 초반 당시 유럽과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칼 구스타프 융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겠지만, 인류학 내에서는 '문화와 인성 학파'라고 일컬어지는 연구 경향이 크게 작용했다.
인류학자들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독특한 정신 현상의 사례에 대한 비교문화학적인 연구를 통해, 정신의학의 분류체계에서 '문화의존증후군'이라는 범주를 새롭게 구축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예로 한국 사회의 '화병'과 '신병'도 대표적인 문화의존증후군에 속한다. 이처럼 의학적인 설명만으로 파악될 수 없는 정신질환에 대한 연구는 현재까지도 의료인류학의 주된 관심 분야 중 하나로 남아있다.
3) 민족의학
비서구 지역의 전통 의료에 관한 인류학적 관심은 오늘날 민족의학이라고 알려진 분야와 연관된다. 20세기 초에 인류학자들이 비서구 지역에 관한 현지 연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이들은 경제체제, 경제활동, 사회조직 및 종교적 의례와 더불어 질병에 대한 믿음과 현지의 치료 방법에 대한 자료를 함께 수집하였다.
영국의 인류학자인 윌리엄 헐스 리스 리버스는 토착 의료체계는 하나의 사회제도이며 다른 사회제도와 마찬가지로 인류학의 연구 대상으로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나아가 토착 의료행위는 현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매우 합리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리버스는 서구와 비서구를 차등 짓는 당시의 서구 인류학적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즉, 비서구 사회의 의료는 종교나 마술이 얼마든지 그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원시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현대 의료인류학에서는 상이한 의료체계를 차등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비판적이며, 서구의 근대 의학 또한 가장 진보한 것이 아닌 하나의 동등한 의료체계로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4) 국제보건운동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향한 미국의 원조 계획과 더불어 세계보건기구가 설립되고 또 개발도상국에서 대규모의 공중보건 계획이 실시됨에 따라, 국제보건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와 다양한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활동하던 보건 계열 종사자들은 개발도상국의 보건 수요가 선진국의 보건정책을 단순히 이식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현장 경험으로부터 깨닫고 인류학적 지식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의료인류학자의 지식과 연구 방법은 국제보건 활동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해 왔으며, 또 적지 않은 의료인류학자들이 국제보건기관과 단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의료인류학자는 이 네 가지 전통 중에서도 국제보건운동에서 이루어진 인류학자들의 적극적 참여가 의료인류학의 가장 직접적인 뿌리이자 이 분야가 급성장하는 데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5) 의료인류학의 확장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의 전통은 상호 간에 영향을 주면서 발전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다가 1950년대 이후 의료인류학이 확립된 뒤에야 공통의 문제의식 속에 통합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인류학 이론의 발전에 따라 나름의 변화를 거치면서 성장해왔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의료인류학 분야는 인류학 내에서도 보다 중심적인 하위 분야로서 자리를 잡았다. 의료인류학은 '의료체계에 관한 비교 연구'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고 해석인류학, 상징 연구, 현상학과 연결된 독특한 이론적 기초를 발전시켰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의료인류학은 그 규모가 크게 확장되었는데, 그러한 성장 배경에는 임상적 환경 속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이 늘어나고, 의료인류학과 관련된 이론적 논쟁이 학회와 학술지를 중심을 활발히 제기된 것과 관련이 깊다. 최근 들어 의료인류학자들은 과학기술 사회연구를 하는 인류학자들과 함께 생명 기술에 대한 관심 속에서 유전학, 제약회사, 최첨단 치료요법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또한 임상 의사, 환자 그리고 생명윤리학자들과 함께 의료문화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기획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의료인류학에 대하여 알아 보았다. 다음 번에는 더욱 흥미로운 인류학의 하위 분야에 대하여 알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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