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인류학은 다양한 학문적 경향과 강조점들이 있지만 문화와 심리의 상호관계에 관한 질문이 심리인류학의 중핵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1. 심리인류학의 정의
심리인류학은 문화인류학의 하위 분야로서 인간 경험의 사회문화적인 차원의 관련성에 대해 다룬다. 문화인류학이 구체적인 사회문화적 현상에서 보편성과 다양성이라는 인간 문화의 두 축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면, 심리인류학은 개인들의 심리적인 과정과 문화적인 과정이 어떻게 서로 관련되어 있는가의 문제에 주목한다. 즉, 심리인류학은 인구 집단 간에 심리적 차이가 있다고 전제하고 그 차이를 사회문화적 환경 차원과 관련지어 탐구하는 학문 영역이다. 심리인류학에는 다양한 학문적 경향과 강조점들이 있지만 문화와 심리의 상호관계에 관한 질문들이 중핵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2. 심리인류학의 역사와 발전단계
심리인류학이라고 불리는 분야도 다양한 학문적 전통 속에서 다양한 경로로 발달해왔으며, 서로 다른 접근들이 때로는 경쟁하면서 이론적, 경험적 연구 성과를 이루어오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세기 초반에 인류학이 하나의 학문 분야로 성장할 때 심리인류학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에는 문화인류학이 곧 심리인류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는데, 이에는 훗날 ‘문화와 인성(culture and personality)’ 학파로 불리게 된 학자들의 공헌이 컸다.
사모아 뉴기니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자국인 미국이 현실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던 마거릿 미드는 문화와 인성 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미드는 사모아의 청소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사모아 청소년들은 미국 청소년들과 달리 사춘기가 질풍노도의 시기로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사모아의 사회문화적 환경과 사춘기의 심리적 경험이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자국과 사모아 청소년들의 사례를 통해 주장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미드는 1928년에 출간한 저서 「사모아의 청소년」에서 미국의 주요 사회문제였던 사춘기 문제가 심리학자들이 주장하듯 사춘기에 발생하는 생리적 변화로 인한 보편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사회문화적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는 문화 특수적 현상임을 주장하였고, 미드의 이러한 연구는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 다른 대표작인 「세 부족 사회의 성과 기질」에서도 뉴기니 세 부족의 여성과 남성의 기질에 대한 연구를 통해 서구사회에서 흔히 여성적 또는 남성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인성적 특성들이 본질적으로 타고난 생물학적 특성이라기보다는 개별 사회의 역사적 과정에서 생성된 것이라는 점을 주장하여 페미니즘 운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 다른 대표적인 학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저서에서 서로 현격히 다른 인성적 특성을 지닌 미국 남서부의 주니, 남태평양 뉴기니의 도부, 캐나다 북서부의 콰키우틀 사회에 대한 비교 연구를 통해 개인의 인성에 문화가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였다. 특히, 일탈이 개별 사회 구성원의 개인적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인성이 사회의 지배적인 인성 유형과 맞지 않는 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문화와 인성 학파의 작업이 과도한 일반화, 문화결정론적 시각 등의 문제로 비판받는 것을 계기로 심리인류학은 20세기 중반에 침체기를 겪었으나 1970년대 이후 인지인류학, 자아 및 감정 연구, 문화적 스키마 연구, 사람 중심의 민족지, 민족심리학, 문화심리학 등 새로운 시각과 접근법으로 재활을 맞이하였으며 이후 하나의 분과 학문으로 단단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3. 심리인류학의 접근 방법과 주요 연구영역
심리인류학을 세부 분야로 나누면 인지, 감정, 동기로 나누어진다. 이렇게 세 개의 분야로 나누어지는 것은 서구의 현대 심리학(心理學, psychology)에서 인지, 감정, 동기가 인간 심리의 서로 연결된 세 가지 기본적 측면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심리인류학이 세부적으로 나누어지기는 하지만 많은 심리인류학자들이 하나 이상의 접근법을 활용하며, 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인간 심리의 세 측면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연구한다.
1) 인지인류학
인지인류학은 문화와 인지의 관계를 다루는 심리인류학의 한 분파로 주로 문화적 맥락을 중심에 두고 인지 발달과 학습, 인지적 과정 등을 연구한다. 이 학문은 문화를 지식으로 개념화한 워드 굿이너프에 의해 체계화되었고, 이후에는 개별 문화의 구성원들이 그들의 세계를 개념화하는 방식에 주목한 민족과학이 인지인류학의 주요 분야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인지인류학 연구는 스키마 이론을 기반으로 문화적 스키마를 밝혀내고 문화적 스키마가 사회 구성원들에게 내면화되고, 공유되고, 분포되어 행동을 동기화하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다른 학자들은 인지심리학, 진화심리학, 인지과학과의 학문적 경계를 아우르는 연구를 통해 인지 체계의 보편성과 문화적 특수성에 주목하고, 이러한 인지 체계가 인간의 사회적 적응 및 진화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2) 감정의 인류학
감정의 인류학은 감정 경험이 사회적 상호 작용과 문화적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고 감정과 사회문화적 맥락의 상용작용을 탐구한다. 이 학문은 감정 경험과 표현에 있어서 문화적 다양성을 중시하며, 민족심리학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민족심리학이란 특정한 문화집단에서 발달하는 토착적인 심리학적 이론 체계이다. 감정 경험, 자아, 인간 발달, 정신병리 등의 심리적 영역 및 현상에 대한 토착적인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한쪽으로 치우친 서구 심리학의 이론을 보완할 뿐만 아니라 인간심리의 보편성과 다양성의 탐구에 중요한 기틀을 제공한다. 원래 민족심리학은 인지인류학의 초기 형태였던 민족과학의 한 종류로 출발했기 때문에 인지인류학과도 연관이 있다. 그리고 심리적인 현상들에 대한 토착적인 이론체계의 연구에서 개인들의 주관적 심리적 세계에 더욱 깊이 접근함으로써 민족심리학은 '감정의 인류학' 혹은 '문화심리학' 으로 확장 , 발전된다.
3) 정신분석적 인류학
인간 심리의 동기 차원을 핵심적으로 다루는 접근은 정신분석적 인류학이라 불리며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기점으로 하는 정신분석학에 이론적으로 기댄다. 정신분석적 심리인류학은 문화적인 맥락을 고려하면서도 인간 모두에 보편적인 정신 역동적 과정이 있다고 전제한다. 따라서 문화의 영향을 강조하는 민족심리학, 문화심리학 등의 문화구성주의적 접근과는 대립과 상보의 관계에 있다. 이 접근에서 흔히 다루는 주제는 자아 발달, 의례와 상징, 신들림, 공격성, 정신병리, 종교적 경험 등이다.
심리인류학은 이렇게 세부적으로 나누어지기는 하지만 많은 심리인류학자들이 하나 이상의 접근법을 활용하며, 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인간 심리의 세 가지 측면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본다. 감정과 자아의 연구에 문화심리적 접근을 할 때 해당 집단의 민족심리학적 범주를 밝히는 것은 필수적이며 어느 정도는 인지인류학적 작업을 동반한다. 그리고 정신분석적 시각을 취함으로써 감정과 자아의 문화심리적 차원에 정신역동의 깊이를 더하는 연구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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