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인류학의 연구 주제와 범위는 언어인류학의 역사적 발전과 무관하지 않으며, 언어 사용을 매개하는 이데올로기의 측면을 연구 주제로 하였다.
1.연구 주제
언어인류학의 연구 주제와 범위는 언어인류학의 역사적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 이를테면 인류언어학에서는 주로 비문자 사회 언어의 문법적 기술을 주요 연구 주제로 삼았으며, 1950년대 발전한 민족과학이나 인지인류학에서는 언어와 문화 또는 언어와 사람들의 관념 또는 인지 체계의 관계를 살피기 위해 다양한 친족 호칭이나 색채, 식물, 동물의 분류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 또한 1960년대 이후 발달한 의사소통의 민족지학에서는 주로 언어의 사용과 그 사회적 기능의 측면을 보기 위하여 특정 언어공동체에서 나타나는 언어 사용의 규칙과 유형을 연구하였으며, 1990년대 이후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한 언어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은 언어 사용을 매개하는 이데올로기의 측면을 주요 연구 주제로 하였다.
언어인류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연구 주제들을 언어예술과 수행과 행동, 언어와 정체성, 언어와 젠더 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
언어인류학의 역사 속에서 주요하게 나타나는 연구영역은 유럽의 문헌학적 전통과 민속학적 전통에서 시작한 언어예술에 대한 관심이다. 여기서 언어예술이란 언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기능이나 창의적인 표현의 측면에서 초점을 맞추는 언어 행위의 한 양식을 나타내며, 이에 대한 관심은 독일의 문헌학적인 관심에서부터 시작하여 러시아의 형식주의와 프라하학파에서 강조되던 연구 경향이다.
말의 대구법, 은유, 운율, 환유 등 말의 내용이 아닌 말의 '형식' 또는 '형태'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언어의 사용과 그 시적인 기능을 로만 야콥슨은 강조한 바 있다. 이런 언어예술의 문예 양식을 이루는 텍스트의 상징적인 의미나 언어적인 기법과 형식의 분석에만 초점을 맞추던 기존의 연구 경향과는 달리, 언어예술의 연행적 측면을 강조하는 연구 경향은 1990년대 이후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언어의 수행 또는 연기와 행동에 대한 관심은 언어의 지시적 기능, 즉 언어가 단순히 사회적 경험 세계의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특정 언어의 사용으로 사회적 상황을 구성할 수 있다고 보는 언어의 수행주의적인 기능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한편, 언어인류학에서는 이러한 언어의 수행 기능이란 수행 동사라는 문법적 요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공동체의 문화적 체계 내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언어의 수행적 기능은 단순한 수행 동사의 사용을 통해서만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발화가 나타나는 특정 말 상황에 작용하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화적 규칙에 따라 다른 양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수행적 기능에 초점을 두는 연구는 이후 각종 의례나 언어예술에 대한 언어인류학적인 연구로 발전되기도 하였고 언어 또는 텍스트가 수행을 통해 어떠한 상황적 의미를 전달하고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지 살펴봄으로써 보다 역동적인 언어 분석의 시각을 제시하게 된다. 이런 수행에 대한 관심은 1990년대에 이르러 수행 중심적인 연구의 경향으로 이어졌다.
2. 범위
언어인류학의 주된 연구 주제 중 하나인 언어와 정체성은 1990년대 이후 사회과학 전반에서 나타나는 사회구성주의의 영향에 따라 언어인류학에서도 정체성의 구성 과정 자체에 대한 초점이 주어진다. 젠더나 다른 종류의 정체성들은 단순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나 다른 사회적 행위를 통해서 수행되고 구축되는 것이라는 관점이 더욱 강조된다.
또한 발화자, 말을 하는 주체자의 단독 발화 행위가 아닌 대화 상황 속의 언어적 상호작용에 주목함으로써 언어적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참가자들이 어떻게 언어를 통하여 그들의 사회적 세계를 구축해 가는가를 보여주려고 한다. 이런 연구 경향에서 언어, 특히 대화와 같은 언어적 상호작용 자체를 하나의 사회적 조직이라고 규정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상호작용과 언어의 행위성에 대한 관심은 사회과학 전반에서 실천 또는 실행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언어적 실천과 정체성의 문제에 주목하게 되었고 실행공동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기존의 정태적인 언어공동체의 개념에 도전하게 된다. 기존의 언어공동체가 언어 자체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실행공동체는 특정 사회 행위 중 하나인 언어 행위에 주목한다.
언어 자원을 공유하고 이는 언어공동체가 아닌 특정 목표를 위해 다양한 행위를 조직해 나가는 실행공동체에 주목하여 언어 행위를 여러 사회적 실행 또는 실천 중 하나로 간주하는 것이다. 하나의 언어공동체에 속하는 구성원들은 모두 같은 언어 자원을 공유한다고 생각했던 기존의 언어공동체 개념은 그러한 언어 자원이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권력의 문제나, 성이나 인종과 같은 범주가 선천적으로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언어공동체의 개념에서 언어 목록보다는 언어 행위, 합의 보다 갈등과 불균형, 주변적인 정체성이나 개인에 대한 관심 등은 1990년대 이후 인류학 전반에서 강조되었던 문화와 권력의 문제와도 연결이 된다. 이것은 앞서 살펴보았던 언어 이데올로기의 연구과 관심에서 강조된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연구 주제는 언어와 젠더의 영역이다. 젠더는 초기 언어인류학적인 연구에서부터 중요한 연구 주제로 다루어져 왔다. 초기 언어인류학적 관심에서 젠더는 언어 변이를 설명하는 중요한 사회적인 요소로 간주하였으며, 이에 따라 성별 언어 변이를 설명하려는 것이 주된 연구의 관심이었다.
1970년대 주류를 이루었던 '두 문화 이론' 또는 '차이 이론'은 남성과 여성 간의 언어적 차이를 성별에 따른 스타일 차이라고 설명하며 이러한 것을 고유한 성별 속성을 연결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말라가시 사회에서 나타나는 여성과 남성의 언어적 특질이 서구에서 기대되는 것과는 다르며 비서구 사회의 성별 역할에서의 특수성을 논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인류학 전반에서 중요시되었던 권력에 대한 관심과 함께 여성 인류학자들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성별 차이의 핵심은 생물학적인 차이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생물학적인 차이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하는 권력의 효과라는 측면이 부각되었다.
즉, 여성들은 거의 모든 사회에서 '권력이 없는 자'로 규정되며, 반면에 남성은 '권력자'로서 사회를 통제하고 있으므로 어느 사회에서나 보통 여성적인 언어 행위하고 설명되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게 마련이고, 이러한 것은 여성의 종속화를 재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특정 언어가 특정 행위를 내포하고 있는 언행과 마찬가지로 어떤 인간을 남성 또는 여성으로 분류하고 지칭하는 행위 자체가 그 사람의 성을 구축해 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젠더 수행성의 개념은 언어와 젠더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것은 이후 언어와 정체성이라는 또 다른 중요한 연구 주제의 영역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1990년대 이후 동성애 연구와 함께 언어를 통한 섹슈얼리티의 구성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게 이른다.
지금까지 언어인류학의 연구 주제와 범위에 대해 알아보았다. 다음은 좀 더 다양한 인류학의 범위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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